2019년 개봉한 한국 재난 코미디 영화 ‘엑시트’는 유독가스가 뒤덮인 도심을 탈출해야 하는 청춘들의 사투를 경쾌한 웃음과 서스펜스로 엮어낸 작품입니다. 조정석과 윤아의 시너지가 러닝타임 내내 탄탄한 몰입을 이끌며, 재난 장르의 긴장감과 가족영화의 따뜻함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영화소개
‘엑시트’는 재난을 소재로 하지만, 공포와 절망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희망과 재치를 전면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야기는 서울 한복판에 정체 모를 유독가스가 퍼지며 시작된다. 도시가 순식간에 회색의 공포로 잠식되는 동안, 영화는 과장된 파괴를 보여주기보다 우리가 익숙한 빌딩 숲, 옥상, 외벽, 연결다리 같은 일상적 공간을 활용해 체감되는 위기를 만든다. 덕분에 관객은 거대한 CG의 압도감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현실적인 고도감’에 집중하게 된다. 연출은 산악클라이밍과 파쿠르적 동선을 기민하게 결합해, 오르내리는 동작과 수직 동선을 액션으로 치환한다. 이를 통해 주인공들이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곧 생존을 향한 의지이자 성장의 문법으로 읽힌다. 음악과 효과음은 과한 비장미를 피하고 상황 코미디와 타이밍을 살리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관객의 긴장을 조율한다. 특히 사이렌, 확성기, 드론 소리 같은 도심의 잡음이 위기 신호로 재맥락화되며, 장소성과 현실감을 강화한다. 무엇보다 ‘엑시트’는 청년 세대의 불안정한 일자리, 가족 내 미묘한 서열과 기대, 스펙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소품과 대사 곳곳에 스며들게 한다. 트레이닝복, 헬스장 회원권, 잔칫상, 회식장 같은 디테일은 인물의 처지와 감정을 가볍게 던지면서도 정확히 전달한다. 재난의 원인 규명에 시간을 쓰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붙잡고 어떻게 나아갈지를 묻는 이 영화의 태도는, 장르적 쾌감과 동시대 공감을 동시에 확보하는 핵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출연자
조정석은 주인공 용남 역을 맡아, 백수 청년의 무기력과 산악동아리 출신의 피지컬을 설득력 있게 결합한다. 그의 장점인 과장되지 않은 코미디 타이밍과 순간 폭발하는 에너지가 ‘웃긴데 멋있는’ 영웅상을 만든다. 작은 실수나 허둥댐조차 다음 액션으로 연결해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방식은 조정석 특유의 호흡 덕이 크다. 윤아(임윤아)는 의주 역으로 상쾌한 추진력과 현실적 공감대를 동시에 세운다. 안전요원이라는 설정답게 냉정한 판단을 내리면서도, 가족과 동료를 챙기는 세심함을 잃지 않는다. 말보다 눈빛과 호흡으로 긴박함을 전하는 장면들이 특히 돋보이며, 로프를 던지고 장비를 점검하는 손동작의 디테일까지 살아 있어 액션의 신뢰도를 높인다. 가족 역할의 고두심과 박인환은 잔칫상 위의 소동과 재난 상황의 대비를 통해 한국적 가족의 온기와 생활감, 그리고 잔소리 속 사랑을 빚어낸다. 두 배우의 존재감은 영화의 정서적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 주며, 웃음 이후에 남는 진심을 책임진다. 회사와 연회장, 구조 현장에서 등장하는 조연진은 상황 코미디의 타이밍을 분산 배치해 리듬을 풍성하게 만든다. 각자의 표정과 리액션, 짧은 대사들이 긴박한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장면의 온도를 세밀하게 조절한다. 결과적으로 ‘엑시트’의 배우진은 큰 제스처보다 정확한 리듬과 합의로 유기적 앙상블을 이뤄, 재난 코미디라는 장르적 균형을 탐미적으로 완성한다.
🎞️줄거리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용남은 어머니의 칠순 잔치를 위해 연회장에 들른다. 우연히 그곳에서 대학 산악동아리 시절의 선배 의주와 재회하는데, 의주는 현재 같은 건물의 연회장·컨벤션 센터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한다. 반가움도 잠시, 도심에 원인 불명의 유독가스가 급속히 퍼지며 건물 내부까지 침투한다. 저층부부터 차오르는 가스를 피해 사람들은 옥상으로 몰리지만, 출입문은 대부분 잠겨 있거나 차단돼 있다. 용남과 의주는 가스의 상승을 계산해 더 높은 지대로 이동해야 함을 직감하고, 건물 외벽과 옥상 구조물을 활용해 탈출 경로를 개척한다. 에어컨 실외기 라인, 간판 프레임, 연결다리와 비상사다리 등 위험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산악 기술과 팀워크로 위기를 헤쳐 간다. 중간중간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과,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한 장치 마련이 이어진다. 드론과 조명탄, 현수막과 형광 표식 등 즉흥적 도구들이 동원되고, 통신이 끊긴 틈바구니에서 손 신호와 눈빛이 전략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스 농도는 짙어지고 체력은 바닥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작은 우연들이 이어져 결정적 기회를 만든다. 가장 높은 지대까지 도달해 구조헬기에 신호를 보내는 데 성공하는 순간까지 영화는 추락과 상승, 실패와 재도전의 리듬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용남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던 청년에서, 자신과 가족을 구하는 책임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의주는 냉정한 판단과 따뜻한 배려를 겸비한 동료이자 동반자로서 존재감을 확고히 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재난의 원인보다 서로를 끌어올리는 손의 힘이라는 메시지다.
✅총평
‘엑시트’는 아이디어로 짠 액션, 생활감 있는 유머, 그리고 배우들의 정교한 리듬감이 맞물려 장르의 쾌감을 깔끔하게 구현한 재난 코미디다. 과하지 않되 뚜렷한 긴장, 가볍지 않되 따뜻한 위로가 공존한다. 이런점들의 한국형 재난 영화의 수작으로 생각합니다. 조정석과 윤아의 호흡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 재감상을 추천합니다. 후속 감상으로 제작 비하인드와 촬영 동선 분석까지 확장해 보면 더욱 풍성한 영화적 재미를 얻을 수 있습니다.